목동 아파트 투기 특별 단속 <1997년 2월 17일~2월 23일>
24년 전에도 부동산 투기 과열 양상은 사회적 문제였다. 아파트 가격 및 전세값의 상승이 우려됨에 따라 특별단속에 나온다는 기사다. 그때 당시 양천구 목동아파트 1단지 27평형이 1억6천만 원, 35평형이 3억2천만 원, 강서구 가양동 소재 32평형 아파트는 1억8천만 원, 등촌동 소재 34평형 아파트는 2억5천만 원이었다.
학부모가 직접 중학생 등하교길 순회지도 <1997년 7월 7일~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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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적 이슈인 가운데 1997년에도 학교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기사화 됐다. 등하교길 안전을 지키기 위해 강신중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3개 코스로 나눠 활동을 벌이며 순회지도에 나섰다는 기사가 눈길을 끈다.
노현송 강서구청장 당선, 그럼 몇 년 째십니까? <1998년 6월 8일~6월 14일>
1998년 기사를 찾아보니 노현송 現 강서구청장이 상기된 모습으로 웃고 있다. 구청장은 3선까지가 가능한데 어떻게 된 일일까. 노 구청장은 민선 2기에 강서구청장이 되었다가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잠시 강서구청을 떠났던 것. 민선 5기에 다시 강서구청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강서구와 함께 하고 있다. 참고로 왼쪽 위에 계신 분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다.
마곡지구는 원래 황금벌판이었다 <1999년 10월 11일~10월 17일>
마곡지구는 널찍한 도로와 빌딩 숲 사이로 뜨고 지는 태양의 모습이 압권인 곳이다. 불과 몇 년 전에 해도 곡식이 영글어가던 농부의 터전이었다는 사실을 1999년 어느 가을의 지면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때 누가 알았을까. 마곡이 이렇게 격변할지. 서울 안에서 가장 더딘 발전과 가장 드라마틱하게 모습을 바꾼 지역이다.
이산가족 상봉 도왔던 양천경찰서 <2000년 9월 25일~10월 1일>
헤어졌던 가족을 37년 만에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 7세였던 동생이 정류장에서 하차를 잘못하는 바람에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버리고야 말았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았던 훈훈함이 전해지는 장면이다. 요즘 양천경찰서는 어떤가. 정인이 사건에서 안일한 대응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20년 전 가족 사랑, 인간미의 소중함을 알고 있던 그때의 이미지를 다시 회복했으면 한다.
저것이 바로 노트펜의 효시? <2000년 12월 23일~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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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을 끼고 산다. 그런데 저 때만 해도 스마트폰이 없었고 세상 모든 게 어린이들에게는 신기하기만 했을 것이다. 게다나 2000년에 노트펜과 비슷한 장난감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화면을 보던 저 아가씨는 훌쩍 자라 20대 중반은 됐을 듯하다. 그사이 행복한 세상 백화점은 행복한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꿨다.
영화관 전성시대 <2001년 10월 22일~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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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없던 시절, 신문을 꼭 봐야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어떤 영화가 어디에서 개봉하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2000년에 들어서자 거대자본이 영화시장이 진출하면서 영화 시장은 재편됐고, 멀티플렉스영화관이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목동의 킴스시네마와 뉴시네마도 3개 상영관이 동시 상영됐다. 그나저나 영화관 관람은 언제쯤 편하게 할 수 있으려나.
어머니가 치성드리던 시절 <2001년 11월 12~ 11월 18일>
아들, 딸 대학에 붙기를 바라며 학교 교문에 엿을 붙이고 기도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대학입학시험을 치르던 날의 진풍경 중 하나였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난해 대학수학능력평가를 치르는 학교 앞은 한산하기만 했다. 어머니의 정성도 좋지만 따뜻한 곳에서 기다리시면 좋겠다. 시험을 치르다가도 엄마가 앞에 있다는 것을 알면 신경이 많이 쓰일 것 같으니 말이다.
‘만화’가 음란물 1위였다니… <2002년 1월 1일~1월6일>
웹툰이 종이 만화를 대신하는 시대다. 그런데 음란 간행물 1위가 만화이던 시절이 있었다니 아주 먼 옛날 얘기같다. 이때 대안 문화를 찾을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성인지 학습을 실시 했으면 어땠을까. 최근에는 음란물을 보는 행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범죄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는 세상이다.
김치 종주국의 면모란 바로 이런 것 <2002년 12월 2일~12월 8일>
2002년 강서구는 유휴 공지와 도로 안전 지대 등을 이용해 심어놓았던 3천 포기 배추로 김장을 담갔다. 그 김치는 관내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분들에게 나눠드렸다. 겨울철 어려운 이를 돕기 위해 쌀, 라면 등 기부하기 마련이다. 김치 또한 생필품이다. 예나 지금까지도 연말이 되면 이웃의 정을 나누기 위해 김장김치를 나누니 말이다. 한국사람, 김치 없이는 못 산다는 옛 노래 가삿말에도 있다.